동네에 새로 생긴 소품샵에 방문한 적이 있다.
사장님의 취향이 잔뜩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솔직히 내 취향과 딱 맞는 곳은 아니었으나, 사장님이 이 공간에 얼마나 신경을 쏟았는지는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소품샵을 나오며 취향이란 무엇인가 고민했다.
취향은 핵심 가치가 명확하게 서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좋다고 여기는지. 그 기준이 먼저 있어야 한다.
취향은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내 취향과 맞지 않았던 그 소품샵처럼, 취향이 뚜렷할수록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생긴다. 그게 정상이다. 모두에게 맞추려는 순간, 더 이상 취향이라 부를 수 없다.
그리고 취향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결과물에는 드러난다. 그 소품샵 사장님이 "저는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말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만든 것을 보면 안다.
도구의 장벽이 낮아지고,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When anyone can make anything, the big differentiator is what you choose to make.
폴 그레이엄의 말처럼, 만드는 능력이 평준화될수록 무엇을 만들지 선택하는 기준이 경쟁력이 된다.
취향은 더 이상 개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 소품샵의 취향—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경쟁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