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맥의 「High Agency in 30 Minutes」라는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글은 시작부터 이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당신이 낯선 나라의 감옥에서 눈을 떴다고 상상해보자.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상황은 복잡하며, 누구도 쉽게 도와줄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딱 한 사람에게만 전화를 걸 수 있다.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할 것인가?
아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장 똑똑하거나, 가장 돈이 많거나, 가장 권력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 같은 사람. 조지 맥은 그 사람에게 있는 무언가를 ‘High Agency’라고 부른다.
Agency를 옮기면 ‘주체성’에 가깝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High Agency는 단순히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독립적인 성격을 뜻하지 않는다. 현실을 고정된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꿀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태도에 가깝다.
글에서 인상적이었던 비유가 있다. 낙관주의자는 물컵을 보고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말하고, 비관주의자는 “물이 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High Agency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수도꼭지는 어디 있지?”
이 차이가 중요하다. 높은 주체성은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다. 현실을 좋게 해석하는 능력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제약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되,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태도다.
High Agency를 가진 사람은 답을 더 빨리 찾는 사람이 아니라, 막힌 상황 앞에서 질문을 다르게 던지는 사람에 가깝다.
정말 안 되는가?
무엇이 막고 있는가?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뿐인가?
다른 경로는 없는가?
물론 정말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안 된다”는 현실이라기보다 익숙한 결론에 가깝다. 한 번 더 물으면 다른 경로가 보일 때가 있다. 문제는 조건이 아니라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다 읽고 나면 ‘나는 주체적인 사람인가?’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이 남는다.
나는 막힌 상황 앞에서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가.
누군가의 “안 된다”를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내가 찾지 못한 수도꼭지는 어디에 있는가.
High Agency는 특별한 재능처럼 보이지만, 시작은 어쩌면 작은 질문 하나일지도 모른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수도꼭지는 어디에?—High Agency는 막힌 상황 앞에서 질문을 바꾸는 태도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