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애자일을 외치며 다양한 방법론을 채택하고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며,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매번 새로운 업무가 치고 들어오고, 끊임없는 백로그 사이에서 기술 부채는 보이지 않게 조금씩 쌓여간다. 왜 이것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는가가 더 시급하게 다뤄지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팀원 간의 이해가 엇갈리며 조금씩 어긋난다.
"우리는 진정 애자일하게 일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애자일이라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20번이 넘는 스프린트를 운영하며 느낀 것은, 우리가 애자일이라는 틀에 갖혀있다는 것이다.
백로그를 채우고, 플래닝을 하고, 회고로 스프린트를 마무리하는 일상.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이상적인 팀의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형식 속에 애자일의 진짜 가치를 느끼고 있는가 물어본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관성적으로 다음 스프린트로 미완료 태스크를 이월하고, 회고 시간엔 침묵 속에서 억지로 할 말을 짜내곤 했다. 우리가 이 기능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공감대 형성 없이, 이번 주에 '무엇'을 쳐내야 하는지에만 매몰되었다. 목적을 잃은 태스크는 그저 해치워야 할 숙제가 되기 쉽상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범용 조직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들을 우리 팀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도구는 결국 도구일 뿐이다. 팀이 더 즐겁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도입한 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면, 과감하게 그 틀을 부수고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시 찾아야 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스프린트 운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2주였던 기간을 1주로 반 토막 냈다. 대신 남은 작업의 '이월'을 없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리소스를 명확히 파악하고, 밀도 있게 몰입하기 위함이다.
매주 진행하던 플래닝에서는 무거운 논의를 덜어냈다. 대신 한두 달 주기로 프로덕트 백로그를 펼쳐두고, 우리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와 가치를 깊이 파고들어 팀의 눈높이를 맞추는 시간을 별도로 분리했다.
회고 또한 과감히 축소했다. 대신 각자 이번 주에 마침표를 찍은 작업물들을 함께 보며 "끝냈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세리머니를 도입했다. 개인의 티켓으로 파편화되었던 성취감을 팀의 성취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다. 물론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한 달 주기의 깊이 있는 회고는 따로 남겨두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이번 개편이 성공적일지 아닐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분명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힐 것이고, 그때마다 끊임없이 우리 팀에 맞게 형태를 고쳐나가야 할 터이다.
애자일은 방법론이 아니다. 일종의 사고방식이자 철학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해 나가는 태도다.
오늘도 우리는 정답이 없는 길 위에서 우리 팀이 가장 행복하고 몰입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이 치열한 시행착오의 과정 자체가 우리가 애자일하게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스프린트 리빌딩—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수정해 나가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