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놓치는 것

2026-05-10

알고도 놓치는 것

친한 동생과 식물성 계란 스타트업을 창업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가 창업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대표였던 동생의 강한 창업 의지도 있었고, 대체식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시장의 흐름도 있었다. 식물성 대체식품은 앞으로 더 커질 시장처럼 보였고, 그 안에서 식물성 계란이라는 아이템도 충분히 의미 있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식물성 계란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우리에게 명확한 고객 정의나 문제 정의는 없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 것인지와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만 있었다. 누가 이 제품을 간절히 원하는지,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왜 기존 선택지로는 충분하지 않은지에 대한 답은 흐릿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케팅에 대해 외부 멘토링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멘토분은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 고객은 누구인가.

  • 고객이 겪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 우리 제품은 무엇을 해결하려고 하는가.

부끄러웠다.

단지 대답을 못해서가 아니었다. 질문들이 낯설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나는 창업팀을 만날 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의 고통은 무엇인지, 왜 그들이 너의 제품을 써야 하는지. 내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시장의 분위기가 좋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가려주고 있었다. 대체식품 시장은 성장하고 있었고, 아이템은 그럴듯해 보였고, 실제로 어느 정도의 성과도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잠시 미뤄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본질은 성과가 없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좋아 보일 때 오히려 더 쉽게 흐려진다. 시장이 좋고, 반응이 있고,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다시 묻지 않는다. 지금 잘되고 있다는 감각이,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덮어버린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본질적인 질문을 잊지 않으려 한다.

다른 조건이 좋아 보여도, 이미 괜찮은 신호가 나오고 있어도, 계속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 고객은 누구인지. 그들이 겪는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우리는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본질은 몰라서만 놓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좋아 보일수록, 알고도 쉽게 놓친다.

알고도 놓치는 것본질은 모를 때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좋아 보일 때도 쉽게 흐려진다.

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다고 믿는다. 일과 사람, 그 사이에서 마주친 질문들을 짧게 적어둔다. 본질에 가까운 마찰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익숙함 바깥의 질문을 꺼내본다.

이어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