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어릴 때 좋은 질문을 던지는 어른들이 멋져 보였기 때문일까.
강연장이나 수업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모두가 막연하게 느끼던 것을 정확한 문장으로 물어보는 순간이 좋았다. 질문 하나로 공기의 방향이 바뀌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비교적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모르는 것을 묻는 데 큰 두려움은 없었다. 궁금하면 물었고,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물었다. 질문을 많이 할수록 질문을 대하는 내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엔 내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모르는 것, 내가 막힌 것, 내가 이해하고 싶은 것. 좋은 질문이란 내 갈증을 풀어주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답변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지면 좋은 질문을 했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자 질문의 기준이 조금 바뀌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을 묻게 됐다. 내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더라도,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할 것 같은 내용이라면 대신 물었다. 질문은 나 하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더 시간이 지나서는, 내 나름의 답을 먼저 세운 뒤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냥 모른다고 묻기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보는지 묻는 방식이었다. 질문은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을 넘어, 서로의 관점을 맞대는 도구가 되었다.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사실 좋은 질문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걸까.
좋은 질문은 대개 좋은 답변과 함께 기억된다. 같은 질문도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던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어떤 질문은 나에게 좋은 질문이지만 답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질문일 수 있고, 어떤 질문은 답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질문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결국 ‘좋은’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주관적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을 풀어주고, 내 갈증을 해소해주었다면 나에게는 좋은 답변이다. 반대로 답하는 사람이 오래 품고 있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좋은 질문일 수 있다. 같은 대화 안에서도 좋은 질문의 기준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이제는 좋은 질문을 던지려고 애쓰기보다, 대화의 맥락을 더 보려고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상대가 정말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질문이 대화를 열어줄지, 아니면 닫아버릴지. 내가 답을 얻고 싶은 것인지, 상대가 더 잘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인지.
질문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다. 질문은 누군가의 생각을 열고, 서로의 맥락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올 때 비로소 좋아진다.
요즘은 좋은 질문을 찾기보다, 좋은 대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좋은 질문—좋은 질문을 찾기보다, 좋은 대화를 만들고 싶다